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여행을 겸하며 일하는 것을 넘어서, 특정 국가에 머물며 장기간 거주하면서도 일을 이어가는 방식이 하나의 삶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함께 각국은 원격 근무자들을 위한 다양한 체류 제도를 내놓고 있으며, 특히 1년 단위로 머무를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와 같은 새로운 제도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반면, 여전히 많은 이들은 별도의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관광비자를 이용해 단기적인 이동과 거주를 반복하며 노마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무비자 또는 관광비자는 절차가 간편하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일정 기간 이후 반드시 출국해야 하며, 장기 체류의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를 계획하거나 현재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두 가지 체류 방식, 즉 1년짜리 노마드 비자와 90일 관광비자를 중심으로 체류 안정성, 세금 문제, 이동의 자유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비교해본다. 단순히 어떤 제도가 더 유리한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방식이 갖는 현실적 장단점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상황에 따라 어떤 선택이 더 적합할지를 고민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지금의 자유로운 삶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단순한 출국 도장이 아니라 제도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체류 안정성의 차이: 예측 가능한 삶과 반복되는 불안 사이
디지털 노마드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한 곳에 거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측면에서 본다면 1년짜리 노마드 비자는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다. 노마드 비자를 소지하면 최소 1년 동안 해당 국가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고, 그 기간 동안 거주지 계약이나 건강보험, 은행 계좌 개설 등의 일상적 절차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단순히 머물 수 있는 권리뿐 아니라, 현지 사회의 일부로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반면 90일 관광비자는 그 이름 그대로 단기 체류를 위한 제도이다. 비자 면제 국가 간의 협정으로 인해 비교적 자유롭게 입국할 수는 있지만, 체류 기간이 제한되어 있으며, 이를 넘길 경우 불법 체류로 간주되어 벌금이나 추방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관광비자의 본래 목적은 ‘관광’이지 ‘거주’나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현지에서 장기 임대 계약을 맺거나 비즈니스 활동을 하려 할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관광비자는 체류 기간이 끝난 후 반드시 출국해야 하고, 이후 재입국까지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솅겐 지역의 경우 180일 중 90일만 체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유럽 내 장기 체류를 계획하는 노마드에게는 실질적인 제약이 된다. 이처럼 90일마다 이동을 반복해야 하는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로워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거주지 불안, 일정 조율의 번거로움, 행정 처리의 어려움 등 다양한 불안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반대로 노마드 비자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런 제약 없이 한 나라에 머무르며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 계획을 세우거나 현지 커뮤니티에 참여하기도 용이하다. 한 곳에 정착하는 듯한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은 단기적인 여행과는 또 다른 안정감을 제공하며, 무엇보다 삶의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결국 체류 안정성 측면에서 보면, 노마드 비자는 단순한 입국 허가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세금과 행정 처리에서의 제도적 위치
세금 문제는 디지털 노마드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이슈이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 특히 거주지 국가에서의 세금 의무는 체류 형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노마드 비자와 관광비자는 이 점에서 매우 다른 조건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1년짜리 노마드 비자는 해당 국가에서 ‘비거주자 혹은 제한적 거주자’의 지위를 부여받는 경우가 많으며, 일정 소득 기준이나 체류 일수를 넘기면 세금 신고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
노마드 비자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 중 상당수는 외국인의 해외 소득에 대해 비과세 정책을 취하거나, 이중과세 방지를 위한 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은 비자 소지자의 거주 기간, 소득 형태, 원천 국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되므로, 사전에 충분한 세무 지식과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 특히 일부 국가는 원격 근무라도 ‘경제적 활동’으로 간주하여 소득세 신고를 요구할 수 있으므로, 체류 초기부터 세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절세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90일 관광비자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세금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체류 기간이 짧고, 법적으로 노동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서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만약 관광비자로 체류 중이라도 현지에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거나, 클라이언트 미팅, 로컬 비즈니스 협업 등을 진행하게 될 경우, 해당 활동이 세금 대상에 포함될 수 있으며, 출입국 심사나 비자 연장 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행정 처리 측면에서도 두 제도는 큰 차이를 보인다. 노마드 비자를 가지고 있으면 주민등록에 준하는 외국인 등록 번호를 부여받거나, 거주지 등록, 보험 가입, 은행 계좌 개설 등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반면, 관광비자는 이 모든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예컨대 해외에서 송금받은 돈을 현지 통장에 입금하거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려 해도, 관광비자 상태에서는 불가능하거나 매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노마드로서 장기간 안정된 생활을 원하고, 일과 소득을 투명하게 관리하고자 한다면, 세금 문제를 포함한 행정적 기반이 마련된 노마드 비자가 훨씬 실용적인 선택이 된다. 단기 체류를 반복하며 시스템 밖에 머무르는 방식은 처음에는 간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리스크를 수반하게 된다.
이동의 자유와 물리적 제약 사이의 현실적 균형
디지털 노마드 생활에서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이동의 자유’이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은 바르셀로나, 다음 달은 자그레브, 그다음은 발리에서 일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은 많은 사람들이 이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보면 90일 관광비자는 확실히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 비자 면제 협정이 잘 이루어진 국가들끼리는 입국과 출국이 매우 간단하고, 단기간 동안 다양한 도시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노마드 비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체류 국가가 정해져 있으며, 일정 기간 동안 그 나라에 머무르기를 요구한다. 일부 국가는 장기 체류 조건으로 최소 체류 일수를 정해놓고 있어, 중간에 출국하거나 장기간 외국에 체류할 경우 비자 취소 사유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조건은 이동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하며, 디지털 노마드가 꿈꾸는 ‘국경 없는 삶’과는 약간의 거리가 생기게 만든다.
하지만 이동의 자유가 곧 실질적인 이점으로 작용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90일 비자를 반복하며 여러 나라를 이동하는 방식은 초기에는 흥미롭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와 행정적 번거로움이 누적된다. 출입국 기록 관리, 숙소 계약 반복, 은행 시스템 차이, 비자 정책 변화 등에 따라 계획이 엉키는 일이 빈번하며, 특히 팬데믹 이후 각국의 정책이 자주 변경되면서 여행자들이 당황하는 사례가 많았다.
노마드 비자의 또 다른 장점은 단일 국가 안에서의 자유다. 즉, 한 나라 안에서 도시 간 이동이나 장기 거주, 현지 사회와의 관계 맺기 등은 훨씬 자유롭고 깊이 있게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이동보다는 ‘삶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노마드의 가치를 확장시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 관광비자로 이동을 반복할 경우, 사람들과의 관계는 표면적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고, 지역 사회에 대한 이해나 참여 역시 제한적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동의 자유는 양날의 검이다.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은 동시에 아무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기 체류 비자인 노마드 비자는 이동의 유연성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깊고 안정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다 지속 가능한 노마드 생활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