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지리적 제약 없이 전 세계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단지 여행을 겸하며 일하는 수준을 넘어서, 외국에 장기 체류하며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디지털 노마드 비자'이다. 전 세계 수많은 국가들이 이런 수요에 발맞춰 다양한 형태의 비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각 나라의 조건과 절차는 제각각이다. 특히 조지아, 포르투갈,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노마드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국가들로,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만 실전에서는 준비할 것이 많고 각국의 행정 시스템이나 요구 사항에 따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서류 준비'다. 같은 정보를 접하더라도 현지인을 위한 안내와 외국인을 위한 절차는 다르며, 한국에서 직접 신청하는 경우에는 번역, 공증, 아포스티유 등 부가적인 절차가 추가로 요구된다. 이 글에서는 조지아, 포르투갈, 에스토니아를 중심으로 실제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신청할 때 필요한 준비물과 절차를 상세히 안내하고자 한다. 단순히 제도 소개에 그치지 않고, 실전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들과 그 해결 방법까지 담아보았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진지하게 계획하고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조금 더 현실적인 방향을 설정해보길 바란다.
조지아: 'Remotely from Georgia' 프로그램과 유연한 신청 조건
조지아는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비자 시스템을 비교적 빠르게 도입한 국가 중 하나이다. 특히 한국인에게 1년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별도의 비자 없이도 장기간 머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원격 근무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Remotely from Georgia'는 이러한 자유로운 체류를 보다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원격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팬데믹 시기 이후에도 여전히 신청이 가능하다.
신청을 위해서는 원격 근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 매달 최소 2,000달러 이상의 수입이 있다는 점도 증명해야 한다. 또한, 단기 체류가 아니라 최소 180일 이상 거주할 예정임을 명시해야 하며, 체류 기간 동안 유효한 건강보험 가입도 필수 조건이다. 필요한 서류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여권 사본, 재직증명서 또는 클라이언트 계약서, 그리고 은행 계좌에서의 소득 증빙이 기본이며, 건강보험 증명서 역시 요구된다.
한국인으로서 이 서류들을 준비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언어다. 대부분의 서류는 영어로 작성되어 있어야 하며, 한글 서류는 공인 번역과 함께 제출하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은행에서 발급받는 계좌잔고 증명서는 영문으로 요청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국 내 발급이 가능한 국제 건강보험 상품도 다양하게 존재하므로, 체류국에서 효력이 인정되는 보험인지 사전에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조지아의 장점은 신청 절차가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신청 포털을 통해 서류를 업로드하고 대기하면 수일 내에 승인이 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승인 후에도 현지에서 세금 등록이나 주소 등록과 같은 행정 절차가 필요할 수 있으므로, 입국 후에는 조지아 현지 커뮤니티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조지아는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고, 제도적으로도 유연하기 때문에 디지털 노마드 입문 국가로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포르투갈: D8 비자와 까다로운 준비 과정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제도 정비가 비교적 늦은 편이었지만, 2022년부터 정식으로 ‘D8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도입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안정적인 유럽 생활을 가능케 해주는 중요한 제도이기도 하다. 다만 포르투갈 비자는 신청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고, 준비해야 할 서류의 양도 많으며, 심사 기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신청자는 원격 근무 형태로 해외 소속의 직장에 근무하고 있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야 하며, 포르투갈 정부가 제시한 월 소득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기준은 포르투갈 최저임금의 4배 수준으로, 약 3,000유로 이상을 꾸준히 벌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외에도 범죄경력조회서, 세금납부 증빙, 숙소 계약서, 건강보험 가입 증명 등 세부적인 항목들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신청하는 경우 주한 포르투갈 대사관을 통해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이 과정은 예외 없이 엄격하게 진행된다. 가장 주의해야 할 서류는 범죄경력조회서인데, 이는 경찰서를 통해 발급받은 후 외교부 아포스티유 인증과 공증 번역까지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소 2주 이상이 소요된다. 또한 포르투갈 내에서 체류할 주소도 미리 제출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장기 숙소를 확보하거나 현지인의 명의를 빌려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의 절차가 요구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기 숙소 예약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사관 측에서는 에어비앤비 예약 확인서를 반려하거나, 임대 계약서 형식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달 이상의 계약이 명시된 영문 혹은 포르투갈어 계약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건강보험 역시 유럽 내에서 의료 보장이 가능한 국제 보험이어야 하며, 가입 증명서에 '유럽 내 효력 있음'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심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포르투갈 비자는 확실히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준비과정이 부담스럽고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계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류의 정확성과 번역 상태에 따라 승인이 좌우되므로, 모든 자료는 꼼꼼히 검토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에스토니아: e-Residency와 디지털 노마드 비자의 실제 차이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 시스템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디지털화를 가장 앞서 이룬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외국인을 위한 e-Residency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 설립과 세무 활동 등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행정적 거주권일 뿐이며 실제로 에스토니아에 거주할 수 있는 비자는 아니다. 따라서 에스토니아에서 실질적으로 체류하고자 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별도의 ‘Digital Nomad Visa’를 신청해야 한다.
이 비자는 외국 기업에 원격으로 근무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기준 소득은 월 4,500유로 전후로, 지난 6개월간 지속적으로 해당 수입이 발생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로 여권, 재직 또는 계약 증명서, 건강보험 가입 증명, 체류 목적 진술서, 그리고 숙소 예약 확인서 등이 요구된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한국에서 직접 신청하려면 헬싱키 주재 에스토니아 대사관을 통해야 하므로 사실상 핀란드를 경유하는 절차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신청자들이 유럽 내 타국에서 단기 체류 상태로 입국한 후 현지에서 장기 비자를 신청하는 경로를 택한다.서류 준비 시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는 체류 목적 진술서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 문서가 아니라, 에스토니아에 왜 체류하고자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활비를 조달할 예정인지 등을 상세히 설명해야 하며, 자기소개서 형식으로 1~2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법이나 문장의 신뢰성 또한 심사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므로,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전문가의 첨삭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에스토니아는 전자문서 제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대부분의 신청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지만, 원본 서류를 요구하거나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유연한 계획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이 나라는 제도가 명확하고 온라인 기반이 잘 갖춰져 있어,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